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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일본 영화 괴물 관람 후기 감독 배우 상징

by 설희아빠 2025.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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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괴물

♣ <괴물>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감독 중 한 분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입니다.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가족과 관계에 대한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이 이번에는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되었다는 소식에 큰 기대를 안고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특히 이번 작품은 고레에다 감독이 처음으로 외부 각본가(사카모토 유지)와 협업한 작품이자,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수작이라 더욱 궁금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감정은 충격과 먹먹함,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를 괴물로 만들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깊은 성찰이었습니다. 공백 제외 1500자 이상으로 이 영화의 놀라운 구조와 메시지를 풀어보겠습니다.


♣ 세 개의 시선이 교차하는 미스터리한 줄거리와 감독/배우진

영화 <괴물>의 줄거리는 하나의 사건을 세 명의 주요 인물 시점으로 반복하여 보여주는 독특한 3부 구성을 취합니다. 이야기는 싱글맘인 무기노 사오리(배우: 안도 사쿠라)의 시선으로 시작됩니다. 사오리는 아들 미나토(배우: 쿠로카와 소야)가 담임 선생님 호리 미치토시(배우: 나가야마 에이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의심하며 학교에 강하게 항의합니다. 학교는 문제 해결 대신 융통성 없고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며 사오리의 분노를 키웁니다. 사오리의 시점에서는 아들을 학대한 교사, 그리고 이를 은폐하려는 학교 시스템이 '괴물'처럼 보입니다.

두 번째 시점은 담임 교사 호리의 이야기입니다. 호리의 시점에서 보면, 그는 미나토를 진심으로 염려하고 도와주려 노력하는 선량한 교사입니다. 오히려 미나토의 행동이 이상하고, 미나토가 괴롭힌다고 주장하는 요리(배우: 히이라기 히나타)라는 친구의 존재가 드러나며 관객은 혼란에 빠집니다. 호리의 시점에서 '괴물'은 미나토이거나, 혹은 미나토를 오해하고 공격하는 사오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점은 두 소년, 미나토와 요리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시점을 통해서야 비로소 모든 오해와 억측 뒤에 숨겨진 진짜 진실이 드러납니다. 사실 미나토와 요리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나 가해자가 아닌, 세상의 편견과 압박 때문에 자신들의 남다른 비밀을 숨겨야 했던 외로운 소년들이었습니다.

연출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맡았고, 각본은 '로맨스의 신'으로 불리는 사카모토 유지가 맡았습니다. 안도 사쿠라(사오리 역)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강인하면서도 불안한 엄마의 모습을 완벽하게 그려냅니다. 나가야마 에이타(호리 역)는 타인의 오해 속에서 점점 고립되어 가는 무기력한 교사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아역 배우인 쿠로카와 소야(미나토 역)와 히이라기 히나타(요리 역)의 순수하면서도 복잡한 감정 연기는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괴물'과 '돼지의 뇌': 섣부른 판단과 차별의 상징

영화 <괴물>의 핵심 상징은 바로 '괴물'이라는 단어 자체입니다. 영화 내내 등장하는 '괴물'은 물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타인을 향한 '편견'과 '선입견',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배척하려는 인간의 나약한 마음을 상징합니다. 각 인물의 시점에서 '괴물'은 계속해서 바뀝니다. 사오리에게는 아들을 아프게 하는 교사나 학교가 괴물이고, 호리에게는 진실을 외면하는 학교 시스템과 공격적인 엄마가 괴물일 수 있습니다. 관객 역시 시점의 변화를 겪으며 '저 사람인가?'하고 섣불리 단정 짓는 과정을 통해, 우리 스스로가 '괴물 찾기'에 몰두하는 존재임을 자각하게 됩니다.

미나토가 스스로 "나는 돼지의 뇌를 가진 괴물이야"라고 말하는 장면 역시 강력한 상징입니다. 여기서 '돼지의 뇌'는 미나토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느끼는 점, 즉 '동성 친구를 향한 감정'을 사회적으로 '정상'이 아닌, '더럽거나 잘못된 것'으로 인식하여 스스로를 비난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상징합니다. 사회가 규정한 '평범함'에서 벗어나는 것은 곧 '괴물'이 되는 것이라는 아이의 순수한 절망을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이 외에도, 교장이 손자를 잃은 후 아무렇지 않은 척 퉁명스럽게 대처하는 모습은 '어른들의 비인간적인 방어 기제'를 상징하며, 진정한 감정을 숨기고 세상에 맞춰 살아가려는 어른들의 고통을 보여줍니다. 결국 영화는 '누가 괴물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서로를 괴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 터널과 철로: 억압된 세계를 벗어나 새로운 희망으로

영화의 중요한 배경이자 상징적인 공간은 바로 버려진 기차 객차가 있는 폐쇄된 터널과 철로입니다. 이 장소는 미나토와 요리가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피해 숨어들 수 있는 유일한 안전지대이자 비밀의 공간입니다. 그들이 객차 안에 숨어있을 때, 밖은 태풍이 몰아치고 폭우가 쏟아집니다. 이 폭우와 태풍은 아이들을 옥죄는 세상의 억압과 혼란, 그리고 갈등을 상징합니다.

영화의 결말은 이 공간에서 이루어집니다. 폭우가 그친 후, 미나토와 요리는 터널 밖으로 나옵니다. 아이들이 철로를 따라 햇살이 비치는 들판을 향해 뛰어나가는 마지막 장면은 가장 강렬한 희망의 상징입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열린 결말이기도 하지만(아이들의 생존 여부에 대한 해석이 다양함), 고레에다 감독은 아이들에게 "살아있다는 생각으로 연기하라"고 주문했다고 합니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들이 뛰어가는 들판의 철로는 더 이상 막혀있지 않고, 그들을 가로막는 철문도 사라집니다. 이는 아이들이 세상의 기준과 편견이라는 억압(철문)을 벗어던지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인정하며 새로운 삶(맑은 날씨, 열린 들판)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상징합니다. 미나토가 "우리는 다시 태어난 걸까?"라고 묻는 것은, 과거의 상처와 억압을 털어내고 '괴물'이 아닌 '나'로 살아가고 싶다는 염원의 표현입니다. <괴물>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엇갈리는 수많은 시선들이 결국 한데 모여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영화였습니다.


♣ 총평

<괴물>은 세 인물의 시선이 교차하며 진실에 다가가는 퍼즐 같은 구성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고레에다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사카모토 유지 작가의 통찰력 있는 각본, 그리고 배우들의 완벽한 연기가 어우러져 '타인에 대한 이해'라는 묵직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룹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누군가를 '괴물'이라고 단정 지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의 편견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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